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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maker] 공학과 그라피티가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등록일 : 2019-10-01 13:19:59 조회수 : 215

공학과 그라피티가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그라피티로 저를 표현할래요”

 

그림을 바닥에 마음껏 그렸다 지웠다 하는

‘Pourtrait’ 조정민 메이커

 

 

 

어릴 적부터 만들기를 좋아한, 조정민 메이커. 특정 원리로 작동하는 기계를 기획하고 설계하고 가공하며 조립해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모든 과정을 즐겼다. 그래서 전공도 기계항공공학부를 택했으며 만드는 사람들의 축제인 ‘메이커 페어 서울’은 2014년부터 6회 연속 참가한다.

그런 그가 메이커 페어 서울 2019에 나름 큰 판을 깔 참이다. 붓는다는 뜻의 ‘pour’와 초상화 ‘portrait’를 합친 ‘Pourtrait’라는 작품으로 말이다. X축과 Y축으로 움직이는 플로터가 가루를 뿌리며 바닥에 마음껏 그림을 그린다는데 이 재미난 기계의 탄생비화와 활용범위를 물었다.

 

 

 


# Pourtrait는 어디에서 영감을 받아 기획했나요?

어렸을 때 운동장에 가면 있는 라인 그리는 기기를 정말 좋아했어요. 석회가루가 든 카트를 밀기만 해도 라인이 착 생기니까 매우 신기했죠. 라인기를 들여다보면 바퀴 축에 연결된 물레방아 같은 게 따라 돌면서 가루를 뿌려주는 방식으로 움직이거든요. 이를 임의로 제어할 수 있도록 모터를 달면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금 더 직접적으로 Pourtrait를 만들어야겠다고 영감을 받은 계기는 이반 미란다(Ivan Miranda)라는 메이커 유튜버가 만든 ‘샌드드로잉로봇(Sand Drawing Robot)‘을 보면서였어요. 말 그대로 프린터처럼 백사장의 모래를 그으면서 그림을 그리는 기계거든요. 생긴 모양도 느낌이 있을 뿐 아니라 드론과 타임랩스를 이용해 찍은 영상도 멋있어서 관심이 갔어요.


# 그라피티에서도 영향을 받았다면서요?
제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그라피티예요. 문화적인 요소로써 거리에서 자기만의 표식을 남기며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 좋아요. 다만 공공장소에서는 가끔 다른 사람들의 불쾌감을 유발하는 것이 사실이에요. 그라피티 형식으로 표현하되 페인트나 스프레이 같은 영구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사례에 관심을 갖게 계기가 됐죠. LED를 붙인 자석을 만들어 철제 벽에 붙였다가 떼거나 빔프로젝터와 레이저 포인터를 이용해 벽에 그림을 쏴서 보여준 뒤 꺼면 바로 사라지는 것처럼요. 재미있고 매력적이었죠.

 

# 라인기와 샌드 드로잉 로봇이 지울 수 있는 그라피티의 시작이군요?
맞아요. 그래서 가루를 뿌리는 방식으로 바닥에 그림을 그리면 어떨까 떠올려본 거예요. 비만 내리면 다 없어지니까요. 이런 면에서 양쪽 모두의 필요충분조건을 만족하는 요소가 될 수 있겠다고 여겼죠. 이 프로젝트의 세 아버지는 라인기와 샌드 드로잉 로봇 그리고 그라피티라고 하면 될 듯해요.

 

 

 

조정민 메이커는 샌드 드로잉 로봇 유튜브 영상 등을 보며 아이디어를 얻었다.

 

# Pourtrait가 그림을 그리는 데에 어떤 원리나 프로그램으로 구현되는지요?

이 기계는 깔때기 아래 끝부분의 물레방아를 얼마나 빨리 돌리느냐에 따라 그림의 농도와 명암을 조절할 수 있어요. 제어회로와 연결한 스테핑 모터를 이용해 레일 위를 오가는 Y축과 양 바퀴로 움직이는 X축이 이동하며 해당 위치에 맞는 양만큼 바닥에 가루를 뿌리는 식이죠. ‘렙랩(RepRap)‘이라는 3D 프린터 오픈소스를 필요에 따라 사용했고요. 기존 3D 프린터에 있어야 할 노즐의 온도 제어나 Z축은 비활성화하고 2D로써 여기에 필요한 기능만 쓰고 있어요.

그래서 BMP 확장자의 이미지 파일을 기계에 입력하면 각 좌표의 명암에 따라 회전도를 산출해 G코드로 변환하고 이를 읽고서 스스로 그려내요. 벡터 이미지를 넣어주면 아웃라인만을 따서 그림을 그려요. 특히 텍스트의 경우 이런 식으로 해주면 콘트라스트가 훨씬 강해지니까 더 효과적이죠.

 

 

원하는 명암에 따라 가루를 조절할 물레방아 부분(좌) 레일 및 바퀴 장착으로 완성될 Pourtrait의 상상도(우)
 

 

# 석회가루 외에도 다양한 재료를 적용할 수 있다고 했는데 어떻게 가능한가요?
일단 가루로 된 건 뭐든지 뿌릴 수 있어요. 그렇다 보니 그림 그리기를 시도해볼 재료의 폭이 다양해졌죠. 꼭 라인기에 쓰는 석회가루가 아니더라도 놀이터의 모래도 충분히 가능하고요.

게다가 흙밭 위에 Pourtrait로 잔디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면 원하는 그림의 모양으로 싹을 틔울 수도 있어요. 그런 식의 농장에서 원하는 위치에 원하는 작물을 심는 상업적으로도 충분히 실용적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밤중 열리는 파티에 화려한 효과를 주고 싶으면 톱밥에 질산칼륨 같은 물질을 넣어 섞어 뿌린 다음 불을 붙이면 바닥에 그려놓은 모양 그대로 불타오르는 연출도 가능하고요.

 

# 제작은 언제부터 시작했나요?

4월부터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며 설계를 시작했어요. 틈틈이 시간을 내며 진도를 나가다 7월 중순쯤 설계를 완료했고요. 3D 프린팅같이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과정을 먼저 진행하고 그 외에 있어야 하는 부품들도 찬찬히 주문한 후 8월 첫 주부터 준비된 재료들을 가지고 현재 본격적으로 조립에 들어간 상태예요.

 

 ▼ 조정민 메이커는 개인 유튜브 채널을 운영, 고등학교때부터 메이킹을 해왔다.


# 제작 중 기술적으로 어려웠던 부분은 어떻게 해결했나요?
기술 면에서 제일 도전이라 생각된 부분이 하나 있어요. 보통 모터를 돌릴 때 전력을 공급하고자 전선을 연결하잖아요. 그러면 모터가 왔다 갔다 할 때 긴 전선이 치렁치렁해져요. 공작기계나 CNC의 경우 거기에 케이블 체인을 입혀 깔끔하게 정리하지만 Pourtrait에 쓸 전선은 단 두 가닥이면 되는데 거기에 체인을 달자니 과해 보였거든요. 무엇보다 저는 생산 기계보다는 스타일리시하고 예술적인 작품을 만들고 싶은데 그런 걸 쓰면 거추장스러워지기도 했고요.

그래서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고 한 가지를 떠올렸어요. 모터가 오가는 알루미늄 소재의 레일이 두 개니까 거기에 전류를 통하게 해서 말 그대로 자체를 전선으로 쓰는 거죠. 레일을 잡아주는 베어링을 통해 전력을 끌어다가 모터에 연결하며 공급해주는 거예요. 마치 지하철이 전력을 받아 달리는 원리처럼요. 이러면 구조상 훨씬 간단해지리라 봤어요.

 

# 또 다른 어려움은 없었나요?
이렇게 했으나 다른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설계상에서는 항상 완벽하나 실제로 만들어보면 꼭 그렇지가 않잖아요. 레일의 구간마다 미세한 뒤틀림이 있고 그 때문에 레일을 잡아주는 베어링이 어딘가에서는 약간 뜨니까 그 부분에서 곧바로 접촉 불량이 발생했어요. 모터가 도중에 움직이지 않는 거죠. 게다가 잘 움직인다 해도 접촉면적이 위치별로 계속 달라지는 사이에 저항값이 여기저기서 변하다 보니 모터 속도도 들쭉날쭉하는 문제가 나타났어요.

지금은 기존에 있던 걸 최대한 이용하느라 레일을 베어링이 직접 잡아서 연결했거든요. 대신에 조금 더 전철에서 쓰는 구조와 비슷하게 따로 레일에서 전기를 끌어오는 구조물을 만들어 달아줄 생각이에요. 스프링 등을 이용해 레일을 눌러 접점이 지속적으로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설계를 손봤어요.


# 메이커 페어 서울 2019 현장에서 Pourtrait를 어떻게 보여줄 생각인가요?
작년 메이커 페어 때 문화비축기지에 가서 보니까 가운데 넓은 공터가 있더라고요. 그곳을 최대한 활용할 생각입니다. 부스 안에서만 머물지 않고 바닥에 여러 그림을 그려내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싶어요. 이를테면 긴 문장을 쭉 적는다든지 여러 번 덧칠하면서 모나리자 같은 그림을 초대형 스케일로 그린 다든지 바닥에 대고 계속해보고 싶어요. 물론 ‘MAKER FAIRE SEOUL 2019’ 문구도 예쁘게 그리고요. 드론 가져온 분한테 찍어달라고 부탁도 하면서요.

 

 

 


조정민 메이커는 차분하고도 진중하게 Pourtrait 제작 과정을 설명했다.

 

# 요즘 메이커 운동을 바라보는 조정민 메이커의 생각이 궁금해요.

2014년 처음 메이커 페어에 참가할 당시에는 제가 고등학생이었는데요. 아무래도 나이가 어려서인지 청년 창업이나 일자리 창출과 연관시키면서 만들기가 좋아서라기보다 돈을 보고서 몰려드는 사람들만 보였어요. 저는 그게 순수성을 훼손하는 것 같아 싫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니 만들기를 상업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교육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그 자체로 나름의 의미가 있더라고요. 비상업적인 부분도 물론 마찬가지고요. 돌이켜보면 그냥 사람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중점이나 주관을 골고루 존중하며 다양한 방향으로 가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해요. 그런 측면에서 꼭 어떤 게 맞고 틀리다 그러기보다 그것들을 다 포용할 수 있는 자리가 바로 메이커 페어인 듯해요.

 

# 끝으로 메이커 페어 서울 2019를 앞두고 메이커나 관람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우리 가족 중에서 저만 이과예요. 그래서인지 제가 만드는 기술의 수준이 올라갈수록 공감을 받기가 어렵더라고요. 이게 왜 대단한지 이해를 잘 못 해주니까 답답함도 있고요. 저는 나름대로 엄청나게 고심해서 해답을 찾아내며 기껏 공들여 만들었는데 결국 자기만족으로만 남아야 한다는 점이 굉장히 아쉬웠어요. 사실 지금 만드는 Pourtrait도 아직은 주위에서 “재미있기는 한데 고작 그거 하겠다고 그렇게까지 만들어야 하냐”라고들 해요.

그러나 메이커 페어에서는 정말 다양한 분야의 메이커들이 서로의 가치를 알아보고 함께 즐거워하잖아요. 그런 부분이 진짜 재미있어서 6년째 매년 참가하고 있거든요. 정말로 감사하죠.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글·사진 | 장지원
http://bit.ly/2ZQXo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