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커 읽을거리

[커버스토리] ‘덕업일치’를 이룬
‘아나츠’ 대표 이동엽 메이커
등록일 : 2018-08-16 16:49:36 조회수 : 1,353


누구나 만드는 능력을 갖고 태어나기 때문에 아이들은 천성적으로 만들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너무 빨리 ‘학업’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버렸기 때문일까요. 만드는 능력도, 즐거움도 점점 잊어가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여기,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만드는 것을 즐기는 이가 있습니다. 3D프린터 제조 및 콘텐츠 개발회사인 ‘아나츠’의 대표, 이동엽 메이커입니다. 취미 삼아 3D프린터를 만들다가 회사까지 창업한 이동엽 메이커. ‘덕업일치’를 이룬 그와 만나보시죠!





# 만들어내는 능력이 남다른 것 같습니다. 타고난 재능인가요?

아이들은 예외 없이 창작력이 뛰어나고 만드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자라면서 그 능력이 줄어들어요. 저의 경우에는 다행히 줄어들지 않았을 뿐입니다. 어릴 적 친구들을 40년이 지난 후에 만났는데, 만들기를 그렇게 좋아하던 친구들이 지금은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너는 아직도 만들고 있어?’라며 저를 놀랍게 여겼습니다. 주변의 여건과 환경으로 인해 특별한 아이들이 평범해지는 것 같아요.




이동엽 메이커가 3D프린터로 제작한 창작물




‘2018 초등교육박람회’에 참가한 이동엽 메이커
# 편집디자인, 방송PD, 영화 특수효과, 게임개발 등을 거쳐 현재는 3D프린터 제작까지… 굉장히 다양한 직업을 두루 거쳤는데, 이러한 경력이 메이커 활동에 어떤 도움을 주었나요?

얼핏 보면 직업이 다양해 보이지만 저에게는 한 가지 길이었습니다.
실제로 저를 아는 사람들은 ‘당신은 왜 평생 똑같은 일만 하냐’고 합니다. 제 전공은 ‘그래픽스’입니다. 그래픽스는 계속 발전하는 학문입니다. 90년대만 하더라도 그래픽스의 최고봉은 편집디자인이었지만, 그 후 컴퓨터로 영상을 편집하는 시대를 맞은 데 이어, 필름이 아닌 디지털 기술로 영화를 촬영하고, 미니어처를 제작해 구현했던 특수효과도 컴퓨터로 가능해진 시대가 된 것입니다. 시대에 맞춰 그래픽스는 업계에 다양하게 적용되며 발전해 왔고, 저 역시 그에 맞춰 메이커 활동을 멈추지 않은 것이죠. 3D프린터의 경우에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는데, 컴퓨터 화면 속에서만 존재하던 것을 바깥으로 끄집어낸 것이 3D프린팅이잖아요?




# 메이커로서 일찍부터 3D프린터를 취미삼아 제작하다가 2014년 실제로 3D프린터 개발 회사를 창업했지요?

그 시기가 제 인생에도 아주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IT기술 기반의 게임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2010년대 초중반 접어들면서 관련 업체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흑자를 내긴 했지만 안주하다가는 머지않아 뒤처지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현업을 조만간 접고 새로운 분야로 옮겨야겠다는 결심을 한 후 열심히 사업 아이템을 찾고 있었어요. 그때 한 친구가 ‘너는 맨날 작업실에서 3D프린터 만들면서 놀던데 그걸로 사업을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어, 그건 내 취미인데?’ 싶었죠. 하지만 이미 저는 외산 3D프린터도 한 대 가지고 있었고, 취미 삼아 공부하면서 만든 3D프린터도 있다는 걸 떠올리고 나니 ‘어라, 그럴 수도 있겠는 걸’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취미가 업이 된 거죠.




아나츠에서 직접 제작한 3D프린터로 3D프린팅하는 모습



# 취미가 창업으로 이어질 경우 단점이 있을 것 같아요.

취미는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에 세상의 트렌드와는 맞지 않아도 됩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덕질’은 자기 개인의 영역이기 때문에 사업성이 없더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업 아이템이라면 문제가 다르죠. 사업 아이템으로 발전시키려면 세상 트렌드도 알아야 하고 소비자 니즈도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메이커들이 이 부분을 놓치고 있어요. 내가 좋아하니까 남들도 좋아하지 않을까, 내가 재미있는데 남들도 재미있어 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시작했다가는 100% 깨진다고 봐야 합니다.



# 그래도 장점이 더 많겠지요?

가장 좋은 점은 에너지가 넘친다는 점입니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다보니 쉽게 지치지를 않아요. 사무실을 놀이터처럼 생각하면 일도 정말 재미있습니다. 일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없으니까 항상 밝아요. 퇴근할 때면 ‘일에 찌들었으니 집에 들어가면 쓰러져 쉬어야겠다’는 생각 대신 ‘지금까지 재미있게 놀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창업 외에도 취미가 삶에 미친 영향이라면?

첫째는 행복한 삶입니다. 일이 즐거우니 가정에도 충실해집니다. 둘째는 제 일이 사회적으로도 가치 있는 일이라는 자부심입니다. 3D프린터는 어린이 교육, 청년 창업 등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거든요. 크리스 앤더슨은 3D프린터를 ‘제조 민주화’의 상징이라고 말했어요. ‘누구나 아이디어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세상’에 제가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뿌듯합니다.
어떤 이들은 메이커 문화가 상업성을 띠면 안 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제 생각은 정반대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메이커 문화가 오래갈 수 없어요. 메이커 문화의 순수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면 DIY에서 한걸음도 더 나아갈 수 없습니다. 원래 메이커란 의미가 기존에는 공장에서 하던 제조라는 ‘산업’을 개인이 직접 한다는 거잖아요



# 덕이 먼저일까요, 업이 먼저일까요?

저에게 묻는다면 덕이 먼저입니다. 일단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 내가 가진 취미가 무엇인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업을 먼저 생각했을 경우 어떤 현상이 벌어질 수 있냐 하면, ‘요즘 이게 뜬다고 하니 이걸로 할까’라는 판단을 하게 됩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인가, 즐거워할 수 있는 일인가’는 뒷전이 되는 거죠. 그 다음 생각할 것이 업으로서의 가치입니다. 내가 즐거워서 한 일이기는 하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창업으로 연결될 수 없으니까요. 메이커라면 마땅히 세상 돌아가는 일, 즉 트렌드에 밝아야 합니다. 내 취미가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쓰일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집요하게 찾아야 합니다. 결국, 내가 좋아하는 것 안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업으로서의 가치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동엽 메이커가 3D프린터로 출력한 물품을 살펴보고 있다.



# 취미를 창업 아이템으로 준비하는 메이커들이 반드시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면?

우리 주변에 찾아보면 오픈소스나 공유된 기술이 풍부한데 대부분의 메이커들은 사전조사를 게을리 하는 편입니다. 일단 창업을 마음먹었다면 이것부터 철저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메이커들의 지식은 언론에서 소개된 정도, 국내 메이커들이 안내해 주는 정도에 멈춰 있습니다. 인터넷만 이용해도 전 세계에 공개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잖아요. 이를 통해 시야도 넓히고 일의 범위도 좀 더 확대할 수 있습니다.




메이커로서, 회사 대표로서 3단계 발전전략을 구상하고 있다는 이동엽 메이커



# 메이커로서, 3D 프린터 개발자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메이커 이동엽도, 아나츠의 대표 이동엽도 3단계의 발전전략을 구상하고 있어요. 첫 번째 단계는 하드웨어 기반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메이커가 될 수 있도록 혹은 업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필요한 기반을 닦는 데 집중하고자 합니다. 현재는 이 단계를 진행 중입니다.
그 다음 단계는 소프트웨어와 콘텐츠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자연어로 3D 디자인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3D프린터를 이용하려면 쉬워야 하거든요. 현재는 1단계에 집중하고 있고 2단계는 ‘취미삼아’ 진행하는 수준이지만 머지않아 다시 새로운 사업아이템으로 발전할 것같아요. 세 번째 단계는 좀 더 장기적인 전략이라 아직은 비밀입니다.

원하는 걸 할 수 있기에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하다는 이동엽 메이커. 그는 메이커 꿈나무들을 위해 종종 수업도 진행하는데, 그때마다 아이들에게 '일을 하면서도 즐거울 수 있다'는 꿈을 심어 주고 있습니다. 그의 바람처럼 '덕업일치'로서 행복을 누리는 메이커들이 많아지길 기대해 봅니다.




글. 이슬비 / 사진. 김정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