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커 읽을거리

[커버스토리] ‘취미 메이커’가 전하는
만드는 행위에 대한 고찰
등록일 : 2018-08-16 17:02:40 조회수 : 1,138


환자의 척추를 고치는 신경외과 의사인 중앙대병원 김영백 교수의 취미는 다름 아닌 목공예. 평일에는 수술실에서 메스와 드릴을 들고 환자를 돌보고, 주말에는 작업실에서 같은 도구를 들고 나무와 씨름한다. 25년째 취미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그로부터 ‘취미 메이커’에 대한 철학을 들어봤다.
- 편집자 주






만들기, 그 행동과 결과의 공통점

우리 모두는 무엇인가를 만들고 있다. 때론 그 형체가 없는 것도 있다. 무엇을 만든다는 일은 정말로 다양하다. 재밌는 것, 우아하고 아름다운 것, 기괴한 것, 만들지만 금방 사라지거나 부서지는 것, 전혀 가치를 줄 수 없다고 생각되거나 혐오스러운 것, 전혀 이해를 할 수 없는 행동까지도 포함되어 다루어진다.
각자 나름대로 이러한 작업을 수행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고, 때론 그 근거를 댈 수 없다는 것 자체가 어떤 행동의 이유라고 강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행동이나 그것의 결과에서 유추할 수 있는 공통점이 몇 가지 있다. 타인이 시도하지 못했던 것을 완성하거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일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이 있다는 것, 그리고 만드는 이가 부여한 나름의 가치가 있다는 점이다. 자기가 만든 것에 고유한 개성과 가치를 넣는 것은 의미가 깊은 일이다.
사람들은 ‘hand made’ ‘home made’ 같은 것들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이를 위하여 기꺼이 추가 비용을 치른다.




<쟁반> : 뜨거운 여름 한낮에 폐허가 된 그리스의 한 신전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화려하게 장식된 신전의 한 가운데서
큰 소리로 자신의 논리를 펴고 있는 건장한 시민의 웅변을 많은 시민들이 경청하고 있다.



그리고 종종 남들로부터 부러움과 감탄을 보너스로 받기도 한다. 때문에 SNS와 같은 공유 시스템들을 통해서 비슷한 취미나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과 의견교환이 손쉽게 되고,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결과물들을 보여주고 의견을 들을 수도 있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서 자신이 하고 있는 작업이 좀 더 구체화되고 객관성을 가지게 된다. 이것이 25년간 목공예를 취미 삼아온 내가 메이커 문화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나 역시 메이커이다.



25년째 취미로 목공예를 해오고 있는 김영백 교수



창조성을 취미에만 적용할 수 있다면

만드는 사람들은 본인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창조성’을 추구한다. 만드는 것 자체를 창조적인 행위라고 말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창조성을 추구하는 이유 중 하나는 ‘신성(sacred)’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다. 자기가 제작한 최종 결과물이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고 귀한 것이라고 대접받는 것은 생각만 해도 즐거운 상상이다. 남과는 다른 어떤 특별한 것을 만들어 낸다면 그 안에는 대단한 어떠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고, 이는 메이커에게 매우 큰 즐거움이 될 것이다.




<악보대> : 자연스러운 각도를 가진 나무의 줄기를 이용해 악보대를 만들고, 지붕이 없는 오두막 입구에 세워 보았다.



그러나 이것이 ‘직업’이라는 틀 안에 들어오는 순간 문제는 간단하지 않게 된다. 자신의 즐거움은 뒤로 밀리고 자신이 속한 팀이나 고용주, 혹은 이를 사용할 사용자의 이해를 충족시키기 위해 ‘창조성’을 발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면 위험이 배제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게다가 타인에게까지 흥미나 영감을 줄 수 있다면 큰 보람까지 얻게 될 것이다.



<자전거> : 고유의 소재를 바꾸어 나무로 만들면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둥근 모습으로 잘 다듬어진 바퀴를
보면 살아있을 때의 나무에 대해 고마운 느낌을 가지게 된다.



직업의 틀을 벗어나 취미로 목공을 시작하다

잠시 내 얘기를 꺼내본다. 어릴 때부터 나무를 아주 좋아해서 작은 소품들을 조립하거나 만들었고, 작은 화단을 정성스럽게 가꾼 경험도 있어서 자연스럽게 목공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은 소품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했는데, 꽤 잘 만들어서 아내가 매우 좋아했다. 덕분에 아내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작업실과 결코 만만치 않은 비용의 각종 기구와 기계들을 준비할 수 있었다. 이와 관련된 서적과 논문들에 푹 빠져서 전공과는 다른 취미 공부도 병행하게 되었다. 제법 손재주가 늘면서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의자> : 잎이 모두 떨어진 겨울의 단풍나무를 베어다가 맞추어 자른 줄기의 끝 부분을 예쁘게 감아주고
푹신한 쿠션을 깔아 놓았다. 생각보다 푹신하고 나뭇가지에 기대는 느낌이 좋다.



수년 전부터는 수확하고 버려진 고추나무의 줄기를 이용하여 여러 가지 작품을 시도하고 있다. 고추 줄기를 그늘에서 오래 동안 말리면 의외로 단단해지고 보기 좋은 연한 갈색으로 변하게 된다. 이들을 조합하여 커다란 공으로 만들어 공중에 매달기도 하고, 뿌리를 포함하여 넓게 펴서 커다란 철망에 붙여서 넓은 벽에 걸어 놓기도 하고, 고사한 향나무의 줄기를 세우고 줄기 한쪽에 둥글게 돌아가면서 붙여서 새로운 느낌의 나무의 형상을 만들어 보기도 하였다. 수확하고 버려진 줄기, 고사한 나무, 그리고 버려진 철망들을 조합하면 아름답고 새로운 작품이 탄생된다는 사실이 필자에게는 커다란 기쁨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시도해볼 예정이다.



<탁자> : 고사한 나무의 굽어진 등걸을 자르고 서로 뒤집어서 연결해보았다. 위아래를
구별할 필요가 없다. 때로 우리들은 자신의 진정한 뒷모습이 어떤지를 모른다.



‘만든다는 과정’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해

직업의 ‘틀’을 벗어나 취미로 뭔가를 만드는 일의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는 결과물에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만들고자 하는 열정을 품고 두려움을 넘어서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취미생활 25년째, 의사로 살며 복잡해진 마음을 비우고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찌우는 데 목공예만한 친구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덧 25년차가 되고 보니 무작정 새로움만 시도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책임감도 느낀다. 무책임하게 재료들을 낭비만 하는 소비자의 차원을 벗어나야 되고 한 단계마다 신중하게 결정하고 수행하는 예술가의 정신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취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즐거움을 넘어선 무언가가 필요하다. 취미를 좀 더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만드는 노력이다. 이를테면 주위 사람들과의 대화, 감명 깊게 읽은 책이나 시의 한 구절, 여행으로 얻은 경험 등을 통해 끊임없이 창의적인 영감을 모으고 오랫동안 다듬고 구체화시키는 노력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면 취미는 단순히 재미삼아 하는 행위가 아니라 내 삶을 살찌울 수 있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취미가 예술로 승화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한 명의 메이커로서 만든다는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다.
지금 한창 불고 있는 메이커 문화도 단순히 유행이나 트렌드에 그치지 않고 대중들이 오래 향유할 수 있는 문화로 발전하려면 이런 문제의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요즘 말로 ‘취미 메이커’로서 고민이다.




<애기 침대> : 첫 손자의 미래를 그려보면서 정성을 다해 만들어 보았다. 아기가 누울 곳은 경건한 고딕양식의 창문을
가진 체리나무 벽으로 두르고, 바닥은 튼튼한 격자로 하여 분리시킬 수 있는 두 개의 의자 모양으로 만들었다.




글·사진. 김영백 교수(중앙대학교병원 신경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