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커 읽을거리

[커버스토리] Maker 운동과 농업의 미래
등록일 : 2018-11-15 19:36:13 조회수 : 641




손을 쓸 줄 아는 사람, 만들다



농민들의 동반자 역할이 기대되는 농업용 로봇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는 약 230만~140만년 전에 살았던 화석인류이다. 하빌리스는 '손을 쓸 줄 아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호모 사피엔스보다 훨씬 오래된 인류이다. 손을 쓸 줄 아는 순간부터 우리는 동물과 구별되기 시작한 것이다. 손을 쓸 줄 알면서 우리는 만들기 시작했으니 그 산물이 ‘도구’이다.
인간은 수많은 것들을 만들어 내었다. 끊임없이 발명되어 온 도구는 인간 상상력의 꽃이다. 인간은 자연을 이용하여 도구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도구를 움직이는 또 다른 도구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급기야 ‘로봇’이라 불리며 인간의 만드는 일을 대신하는 도구까지 만들어 내었다. 손을 쓸 줄 아는 사람들이 로봇을 산업에서 본격적으로 쓰게 된 것은 1960년대부터이다. 1970년대에 급격히 보급되기 시작한 산업용 로봇은, 1980년대에 기술적 안정화시기를 거치며 전성기를 맞이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산업 영역에서 벗어나 2000년을 기점으로 인간의 새로운 동반자로서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지금은 농업분야에서도 이른바 ‘농업용 로봇’이 도입되어 농민들의 ‘동반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농업용 로봇은 우리나라의 경우 1990년 후반부터 연구하기 시작했다. 농촌진흥청에서 개발한, GPS 신호를 받아 움직이는 자율주행 트랙터가 농업용 로봇의 대표적인 개발품이다. 그 뒤로 오이나 토마토 같은 채소류를 접붙이는 접목로봇을 개발하였다. 노동력을 60%나 줄이고, 생산비도 23%를 줄이는 실용화에 성공해, 이탈리아, 미국 등 13개국에 60여 대를 수출한 바가 있다.



점점 똑똑해지는 농촌, 공유와 협력의 문화가 디딤돌

그 옛날 농부들은 농사에 필요한 것을 대부분 직접 만들었던 메이커들이다. 나무를 깎고 다듬어 서까래를 만들고, 달구지를 만들어냈다. 오랜 기간 농업사회를 거쳐 오는 동안 농부들만큼 창조적인 존재도 드물었다.




자연의 재료를 활용하여 직접 만들어 쓰던 농기구.



신기술이 출현하면서 요즘의 만들기는 그 옛날처럼 단순하지 않아진듯하지만 다행히 3D프린터 같은 첨단 디지털기기가 등장하면서 만들기는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더 쉬워졌다. 이러한 환경에서 시작된 것이 현재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메이커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세계인들이 공유하고 있는 아두이노 등의 오픈소스 하드웨어를 활용하여 수분조절기, 온도경보기 등을 직접 만들어 쓰는 농부들도 출현했다. 이들이 스마트팜의 주인이 될 ‘스마트 농부’들이다. 스마트팜은 사물인터넷(IoT) 등을 통해 수집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최적의 생육환경을 자동으로 제어하는 농장을 뜻한다. 예를 들면 온실 내외부에 여러 개의 센서를 달아놓고 온도, 습도, 일조량 등을 감지하고 미리 입력된 설정값에 따라 프로그램이 알아서 온실 환경을 맞추어 주는 것이다. 이미 온도 경보기 등을 쓰고 있는 농부들에게 스마트팜은 그리 먼 미래가 아니다.



농업의 새로운 패러다임, 스마트팜



스마트팜은 IT기술과 농업을 접목한 첨단미래산업의 중심이다.



정부에서도 2014년부터 스마트팜 보급에 힘써 양적인 성장을 이루고 있다. 스마트팜은 노후화된 시설을 개선하고 보강하는 데서 더 나아가 IT기술을 농업과 접목함으로써 첨단미래산업의 중심으로 자리잡는 일이다. 스마트팜 수준은 다양하다. 첨단 식물공장도 있지만 기존 농토에 간단한 정보기술(IT)을 적용한 실용적인 형태도 있다. 우리나라는 이를 3단계로 구분해 추진하고 있다. 1단계는 각종 센서와 폐쇄회로TV(CCTV)를 통해 제어하고 관측하여 간단하게 편의성을 높인 모델이다. 2단계는 온실환경, 토양환경, 작물 스트레스 등을 실시간으로 계측하여 최적의 생육환경을 만들어 주고, 빅데이터 분석으로 최적의 영농 의사 결정을 지원한다. 3단계는 로봇 및 지능형 농기계로 농작업을 자동화하고, 최적의 에너지 관리까지 해주어 경제성을 높인 수출형 모델이다.
현재는 2단계 기술을 적용 중이다. 스마트팜은 농업인의 경험과 감각에 의존하는 주관적이고 추상적이던 농사기술이 센서와 네트워크 기술을 기반으로 계량화되고 객관화된다. 또한 반복적 시행착오와 개인의 노하우에 의해 이루어졌던 의사결정과 농작업의 전문성이 컴퓨터와 인공지능으로 지능화되고 자동화된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인터넷에 연결만 된다면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언제 어디서나 자기 농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농사환경의 변화를 관측하고 멀리 떨어진 원격지에서도 정밀하게 제어 관리가 가능하다.

농촌진흥청은 2018년까지 첨단 스마트팜 핵심기술들을 결합하여 지능형 최적 생육관리 기술을 확보함으로 2세대 스마트팜 모델을 통한 본격적인 한국형 스마트팜 시대를 열어가면서 차츰 고도화시켜나갈 계획이다. 이러한 한국형 스마트팜은 표준화를 기반으로 함은 물론이고,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까지 공개하는 개방형 방식의 스마트팜 플랫폼을 통해 산업 발전을 도모하고 호환성과 확장성을 확보해 나갈 계획이다.
이미 일부 농촌 현장에서는 스마트팜을 도입하여 효율을 높이고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관련 기술을 공유하고 기존의 농사방식이 가진 문제점을 찾아 함께 개선해 나가는 활동들이 시작되고 있다.



농촌을 혁신할 농부 메이커를 기다리다



농업용 로봇의 등장은 새로운 일거리



농업 선진국들은 이미 ICT, 로봇, 드론, 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하여 농업생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고, 글로벌 시장 경쟁력을 선점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대규모 경작지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농업로봇 개발에서 앞서나가고 있고 고령화로 농업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드론과 로봇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으며 네덜란드의 경우 ‘95% 과학기술, 5% 노동’이라는 슬로건으로 농업에 과학기술을 받아들이고 있다. 국내의 농업도 이러한 국제적인 산업 변화에 동참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우리나라에 불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바람이 기회가 될 것이다.
흔히 4차 산업혁명에서 로봇이 득세하면 인간의 일자리를 다 빼앗아 인류가 설 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일부 ‘일자리’가 없어지지만 ‘일거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차세대 일자리는 미래산업에서 찾아야 한다. 그 미래산업은 생산-유통-소비-농촌이 어우러진 농산업이 중심이 될 것이다. 농업인의 일터이자 국민의 쉼터가 바로 농촌이고, 그 농촌이란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산업이 농산업이다.

이제는 농업도 식량 생산의 단순한 목표에서 벗어나 작업의 효율성과 편의성을 추구하고 있다. 이런 환경 변화에 맞춰 이미 선진국에서는 농작업을 무인화하고 자동화하는 시스템이 도입되고 있다. 이에 발맞춰 정부(농림축산식품부)는 2022년까지 스마트팜 관련 산업 일자리 4300개를 만들고 전문 인력을 600명 양성한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청년창업가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스마트팜 혁신밸리도 전국에 네 곳을 조성하기로 했다. 선도 농가들의 멘토링으로 재배 기술을 공유하는 등 상생의 모델을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또한 농업의 범위를 농사에 한정짓지 않고 농산물을 재료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 제품화까지 연계하는 모델을 구축하게 된다. 이처럼 공유와 협업으로 농촌을 변화시키려는 움직임은 농촌의 저변에서부터 메이커운동이 촉발될 수 있는 토양이 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바람은 농촌사회의 변화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기술적 트렌드처럼 회자되기 시작했던 4차 산업혁명의 화두가 예사롭지 않게 진행되고 있다. 농촌에도 4차 산업혁명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러한 바람이 농산업에서 말 그대로 혁명을 일으키고 농촌사회를 변화시키려면 무엇보다 농부들 스스로 ‘농사를 짓는 사람’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만들어 내는 사람’이라는 자각이 있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의 농부들은 농촌에서 지은 1차 농산물을 식품이나 특산품으로 제조·가공해 새롭게 만들어 내는 6차산업을 일으킨 주인공들이다. 지금 농촌사회에 불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바람은 아직 미풍이다. 농촌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바람이 되려면 농부들도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오래 전, 농사짓는 환경을 편리하게 변화시키기 위해 ‘만들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농부의 정신을 되살리기를 기대한다. 머지않아 농부 메이커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게 회자되는 날도 미리 상상해 본다. 거기에 농업의 미래가 있지 않을까.



글. 이용범 원장(국립농업과학원) / 사진제공. 국립농업과학원, 게티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