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커 읽을거리

[커버스토리] 십년후연구소 조윤석 소장
지구를 지키는 메이커 이야기
등록일 : 2018-12-17 16:23:03 조회수 : 513

홍익대 건축과를 졸업한 조윤석 메이커. 90년대 전위적인 락그룹 황신혜밴드의 베이시스트였고 현재는 십년후연구소를 운영하며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활동을 다양하게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최소한의 기능만 갖춘 공기청정기를 만들어 화제가 되었다. 재료는 놀라울 정도로 간단하다. 공기 중 방사성 미립자를 거르는 헤파필터와 PC용 팬, 전원 장치가 전부다. 깨끗한 밤하늘의 별을 보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은하수 공기청정기’라 이름을 붙였다.





Q. 먼저, 십년후연구소가 어떤 곳인지부터 소개해 주세요.



A. 우리들의 10년 후의 삶을 고민하며,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각자가 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하는 연구소입니다. 2008년 즈음 장흥으로 귀농한 적이 있었어요. 전공도 살릴 겸 그곳에 살 집을 지었는데 난방을 고려하지 않은 방갈로 같은 집이었어요. 당시 장흥은 한반도에서 가장 따뜻한 곳이기도 했고 지구온난화가 지구적 화두이던 시기였거든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해 겨울에 엄청난 한파가 닥쳤어요. 동네의 여든 살 어르신이 ‘팔십 평생 처음 겪어본 추위’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의문이 생겼습니다. 지구온난화라는데 왜 겨울이 이렇게 춥지? 이유를 찾다보니 결국 기후변화가 문제이더군요. 그후 십년후연구소의 활동방향을 ‘기후변화’에 맞추기 시작했어요.


Q. 최근에 최소한의 기능만 갖춘 ‘공기청정기’를 만들어 화제가 되었어요.



A. 공기청정기를 만들게 된 것은 사실, 개인적인 이유가 더 컸어요. 제가 미세먼지 민감군입니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엔 피곤해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하다가 결국 지난봄에 심장수술까지 받았어요. 이런 이유로 공기청정기를 만들어보겠다는 생각까지 미치게 된 것 같습니다.



깨끗한 밤하늘의 별을 보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만든 ‘은하수 공기청정기’



Q. 시중에 공기청정기가 많은데 굳이 직접 만들기로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우선, 시중 제품을 구입하려니 너무 고가인데다 전력소모량이 컸어요. 우리나라가 전기를 만들기 위해 한 해 동안 석탄을 태운 양이 2016년 기준으로 1억 3천만 톤입니다. 1년에 인왕산 높이만큼의 석탄을 태우고 있어요. 여기에 공기청정기 생산도 일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공기청정기 시장이 1조 5천억 원 규모라고 합니다. 미세먼지를 해결하기 위한 공기청정기를 만드느라 공장을 어마어마하게 돌리며 화석연료를 써야하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어요.
그만큼 공기는 더 나빠질 테니까요.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고민하던 차에 CAC라는 스타트업을 알게 되었습니다. CAC는 ‘메이커 운동’을 통해 골판지와 차량용 필터로 공기청정기를 만들어 사회적 약자에게 보급하는 일을 하고 있는 곳이에요. CNC의 메이커들과 협업하여 초기단계의 공기청정기를 만들었는데 제가 직접 사용해보니 상상 외의 효과가 있었어요.
그후 기능과 부품을 더욱 최소화하여 지금과 같은 형태의 공기청정기를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종이 한 장과 필터와 팬이 전부인 공기청정기입니다. 5~6평 공간의 공기를 3와트의 적은 전력으로 정화시키기 때문에 한 달 내내 틀어도 전기료는 몇백원 수준입니다. 시중의 공기청정기들이 적게는 30와트 많게는 100와트까지 소모하는 것에 비하면 상당히 적은 수준이지요.
현재 우리나라에 공기청정기 보급수가 400만대 정도이고 앞으로도 1000만대의 추가 구매수요 예상된다고 합니다. 100와트짜리 공기청정기라고 가정하면 1기가와트의 전력이 필요해요. 석탄발전소 2개를 더 지어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미세먼지는 화석연료를 사용하면서 만들어진 산물입니다. 공기청정기가 집안의 공기만 깨끗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집밖의 공기까지 깨끗하게 하려면 화석연료의 사용부터 줄여야 하지 않을까요.




필터와 PC용 팬, 전원 장치가 전부인 공기청정기



Q. 소규모 워크숍 등을 통해 공기청정기 만드는 방법을 공유한다고 들었습니다.



A. 처음엔 각자 필터를 구해오면 팬과 필터를 연결해주는 어댑터 부분을 함께 만들어 보는 워크숍을 여러 차례 진행했어요. 실은, 기후변화를 주제로 워크숍을 하고 싶은데 사람들은 미세먼지에 더 관심을 보기기 때문에 강연과 공기청정기 만들기를 병행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오셨는지 신문기자 한 분이 워크숍에 참석하셨더라고요. 기자분이 공기청정기 만드는 과정을 기사로 쓰면서 갑자기 유명세를 타게 되었어요. 여기저기서 공기청정기를 만들어 쓰고 싶다고 문의가 왔는데 십년후연구소가 관련 재료들을 양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난감하더라고요.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마침 후배가 중국에서 필터를 생산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곳에서 필터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게 되면서 현재는 키트로 제작해 판매도 시작했습니다.



기후변화를 주제로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는 조윤석 소장



Q. 메이커 활동이 지구의 지속가능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A. 우리 사회를 지속가능한 사회로 만들어 나가는 데 메이커들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지구의 상황을 이해하며, 기후변화를 최소화시키고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지 않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메이커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기청정기의 예만 들어도 그렇지 않나요? 메이커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대량생산된 제품을 사용해야 하고 화석연료를 줄일 수가 없게 되고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문제의 해결도 요원해질 것입니다.
메이커들도 세상의 변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워크숍을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메이커들이 어떻게 만들어야 전기를 적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봤으면 좋겠어요. 메이킹의 기획 단계부터 사용하고 폐기할 때까지의 전체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요즘 ‘만드는 사람’들에게 기대해야 할 역할이자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며 지구의 지속가능은 물론이고 메이킹의 지속가능도 보장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소장님에게 ‘메이커’란 어떤 사람입니까?



A. 메이커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입니다. 나의 경우도 미세먼지 민감군으로서 겪는 생활의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공기청정기 만드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가, 나아가 지구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주변에 비슷한 취지를 가지고 메이커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소개해 주세요.



A. 비전화공방이라는 곳을 소개하고 싶군요.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메이킹 활동을 하는 메이커들이 모인 공방인데요. 전기와 화학물질 의존을 최소화해 자립적이고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을 실험하는 공간입니다. 일본에서 ‘적정기술 발명가’로 불리는 후지무라 야스유키 교수가 시작한 운동인데 이곳에서 자작정수기를 만들고 있어요. 공기청정기 워크숍에도 종종 오시곤 합니다.


Q. 메이커로서 앞으로 더 만들어 보고 싶은 것에 대해서도 소개해 주세요.



A. 사람들은 공기청정기 등을 구입하여 내 방안, 내 집안의 공기는 깨끗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서울의 공기, 나라의 공기를 깨끗하게 하기 위한 노력에는 소극적이잖아요. 그래서 달리는 자동차 바람을 이용한 공기청정기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이건 자동차 안이 아니라 자동차 바깥의 공기를 정화하는 것입니다. 자동차가 달리면 서울이 깨끗해지는 거죠. 내년 봄쯤 자동차 회사에 제안을 할 예정입니다. 서울의 공기가 깨끗해지려면 기업의 역할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조윤석 소장은 공기청정기를 만드는 것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지구를 지키는 일이고 평화를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시리아 내전도 내막을 들여다보면 기후변화로 인한 흉작으로 수백만의 농민들이 도시로 밀려들면서 촉발된 전쟁이었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기후학자들도 시리아 내전은 기후변화와 무력전쟁의 연관성을 명시적으로 밝힌 최초의 전쟁으로 평가하고 있다. 조윤석 소장이 틈날 때마다 기후변화 관련 강연을 하며 ‘기후변화’ 전도사를 자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글. 편집실 / 촬영. 김정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