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커 읽을거리

[커버스토리] 적정기술과 메이커의 만남,
지속가능 사회의 첨병이 될 수 있을까
등록일 : 2018-12-17 16:24:29 조회수 : 958

 

 

 

 

 


첨단기술이 아닌, 적정기술

‘적정기술’하면 ‘Q드럼’이나 ‘라이프스트로우’처럼 제3세계를 돕는 원조기술이 생각날 것이다. 흔히 적정기술의 예로 소개되는 ‘Q드럼’은 도넛 모양의 플라스틱에 끈을 달아 만든 물통으로 손쉽게 물을 운반할 수 있는 도구이고, ‘라이프스트로우’는 수자원이 오염되어 있는 지역의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식수 공급을 위해 만들어진 휴대용 정수 빨대를 말한다. 그런데 이렇게 제3세계를 돕는 ‘원조형’ 적정기술이 지금 한국의 메이커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이란 ‘적당한 기술, 알맞은 기술’이라는 말로, 해당 지역의 자원을 활용해서 누구나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을 말한다. 이런 적정기술에는 제3세계를 돕는 ‘원조형’ 적정기술도 있고, ‘마을기술센터 핸즈’처럼 에너지전환을 꿈꾸며 시도하는 ‘국내형’ 적정기술도 있다. 이때 적정기술은 각자 자신이 처한 환경에 알맞은 기술적인 해결책을 찾는다는 것에 그 의미가 있고, 그래서 에너지 위기나 환경문제,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것이 현대 적정기술의 방향이다.


적정기술에서 바라본 메이커운동

이런 적정기술의 관점에서 메이커운동은 보다 ‘반짝거리고, 재미있는, 참신하고 무모한 시도’를 해보는 실험실 같은 느낌이 들고, 반대로 자유로운 메이커의 관점에서 적정기술은 ‘목적성을 가진 약간은 고루한 꼰대’처럼 보일 수 있다. 적정기술운동은 1960년대 원조기술의 성격으로 시작했기에 방향성이 분명하고, 2000년대에 시작한 메이커운동은 그만큼 젊고 밝고 신기술에 개방적이다. 적정기술운동이 목공이나 용접 등 전통적인 아날로그 기술에 대한 활용도가 높다면, 메이커 운동은 3D프린터나 아두이노 같은 디지털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하지만 이것은 표면적인 인상일 뿐이고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적정기술운동과 메이커운동은 닮은 구석이 오히려 많다. 기술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 DIY, 사회를 바꾸려는 운동성, 정보의 공유, 교육적 기능 등은 적정기술운동과 메이커운동의 공통점이다. 실제로 구체적인 사례에서는 둘은 구분하기 어렵다.
라즈베리파이와 태양광을 활용한 아프리카의 무선도서관 시스템(JIT, 손문탁 박사)은 적정기술이면서 동시에 좋은 메이커 사례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굳이 구분하자면, 메이커운동은 발명과 창업을 장려하며 산업적/상업적인 관심이 커 보이는 데 비해, 적정기술운동은 특정한 기술이 그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에 대한 관심이 크다. 그래서 적정기술의 관점에서 더 나은 세상으로의 변화를 이끌고 싶은 메이커라면, 그 기술이 지역사회와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고민하고, 또한 에너지효율이나 환경적 측면을 고려하면 좋겠다.

요즘 들어 메이커운동에서도 적정기술의 방향성에 영향을 받은 사회공헌/지속가능성 등을 고려한(에너지 문제해결, 환경관리, 사회적 약자를 위한) 행사가 종종 열리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핸즈’에서도 실제로 학생들과 로드킬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 모형을 만들어보기도 했고, 시각장애인의 충돌을 방지하는 신발이나 안경을 함께 만들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지 않은 설익은 접근은 교육적으로는 의미가 있으나, 결과적으로 완성도 높은 해결책은 찾지 못하는 경우도 볼 수 있었다.
만약 이런 유사한 과제를 시도하려 한다면, 우선 거창하거나 멋있어 보이는 주제보다는 정말 자신이 개선을 하고 싶은 문제에서 출발하면 좋겠다. 그리고 직접 뚝딱거리며 만들기 전에 그 문제를 사람들이 그동안 어떻게 해결하려 노력했는지 검색을 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나의 아이디어가 기술적으로, 사회적으로 어느 위치에 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적정기술의 관점은 기술뿐 아니라 다른 사회적 영향을 고려하는 것이다.



적정기술과 메이커의 만남

핸즈 작업장에는 조립한 3D프린터도 있고, 목공을 할 수 있는 테이블 쏘나 절단기도 있다. 그리고 아두이노를 이용해서 태양광 자동차나 미세먼지 측정기를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메이커이면서 동시에 적정기술 활동가인 것이다. 특히 환경과 에너지에 대한 고민을 반영해서 태양광 휴대폰 충전기와 에너지 소비가 적은 LED스탠드를 만들고, 태양열을 활용한 햇빛 온풍기나 햇빛건조기를 만들기도 한다. 이런 경험을 통해 에너지문제를 함께 고민해보고, 에너지 절약하는 방법을 찾아보게 되며, 나아가 에너지생산자가 되어 볼 수 있다. 적정기술가의 고민이 메이커의 손을 통해 구현되는 사례이다.

 

 

 

 

 

 

 

 


또한 ‘만드로’ 이상호 대표는 3D프린터로 전자의수를 만들어 저렴한 비용에도 관절이 움직이는 기능을 구현해냈고, MIT의 아모스 윈터 교수(Amos Winter TED영상 참조)는 200달러 미만의 가격으로 지렛대 휠체어를 만들어 여러 지형에서 인간의 팔힘으로 이동할 수 있게 했는데, 이런 예들이 적정기술과 메이커가 잘 결합한 경우이다.

 

 

 

 

 

 

 

 


적정기술과 메이커의 차이, 자전거면 충분할까 전동킥보드로 바꿔볼까의 차이

‘적정기술’이 ‘첨단기술’에 대칭되는 말로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수준에서 주변 환경을 고려해서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을 찾는 운동이라면, ‘메이커’는 개인생산자로서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그 정보를 공유하는 운동으로 볼 수 있다. 하나의 예로 운송수단을 고민할 때, 적정기술가는 ‘자전거’ 정도면 적당하다고 만족할 수 있지만, 메이커는 세그웨이나 전동킥보드를 만드는 것을 고민할 수 있다.
그래서 조금 거칠게 비유하자면, ‘적정기술운동’은 60년대에 태어난 기술의 역할과 방향에 대해 고민이 많은 나이 많은 아저씨이고, ‘메이커운동’은 2000년대에 태어나 이제 새로운 기술에 관심이 많은 10대 청소년이다. 이제 우리 사회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나이 많은 아저씨와 10대 청소년이 함께 머리를 맞대는 것을 상상해볼 수 있을 듯 하다. 그리고 어쩌면 오래된 적정기술의 정신과 철학을 새롭게 해석한 멋있는 ‘메이커’의 탄생도 가능할 것이다.



왜 만드는가?

마지막으로 우리가 ‘왜’ 만드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때로는 우리가 그 답을 잊고 만드는 행위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첨단 산업사회에서 우리는 내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어볼 기회를 거의 얻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은 본능적으로 만들기에 끌리기에 만들기는 자신을 찾는 창조적 행위이며, 동시에 그 과정과 결과물로 다른 사람에게 기쁨과 행복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자칫하면 이 만들기조차 또 하나의 쓰레기를 더하거나 굳이 필요 없는 것을 강박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적정’기술의 ‘적정’은 ‘적당함, 알맞음’을 말한다. 메이커로서 우리에게 ‘적정’한 기술이 무엇인지 계속 질문해보자.

 

 

 

 

 

 

 

 

글과 사진. 마을기술센터 핸즈 정해원